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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풍랑)는 유능한 선장을 만들어 낸다! 홈지기 202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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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풍랑)는 유능한 선장을 만들어 낸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순탄치가 않다. 많은 성도들이 성전 뜰에서만 머뭇거리다가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신다. 성전 뜰에서는 아무런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다. 우리가 상처를 받고 실망하게 되는 곳은 지성소가 아니라 성전 뜰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왜냐하면 40년의 광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지불해야할 수업료(?)도 만만치 않다. 주님은 제자들이 게네사렛으로 건너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치가 않았다. 중간지점에서 광풍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경험한 일은 풍성함과 형통함이 아니라 극심한 기근이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병든 딸을 고치려 주님을 찾아 왔다. 그러나 주님의 치유하심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제자들의 방해와 주님의 상처주심(?)과 침묵하심 그리고 거절이 풍랑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성전 뜰에서 머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지 지성소로 들어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기에 그렇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전 뜰까지만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가? 그냥 돌아가면 다행이다. 상처받고 실망하고 돌아간다. 전도를 하다보면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다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참으로 놀랍고도 착잡하다. 그분들의 항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분들의 실망과 상처의 배후에는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성소에는 상처가 없다. 그곳엔 실망도 없다.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경우에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성소에만 들어가면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는 바로 그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성소로 가는 길목마다 엄청난 풍랑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의 방해가 준비하고 있다. 때론 주님의 거절이 기다리고 있다. 엄청난 희생을 지불해야 한다. 내가 죽어야 들어가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들어가야 한다. 거절함의 풍랑, 침묵의 풍랑, 상처의 풍랑을 뚫고 주님을 만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그립다. 허리케인 같았던 풍랑 앞에서도 꿈쩍 않았던 이 여인에게 주님은 결국 메가톤 급 응답으로 다가오셨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풀무불 속에서 정금이 만들어지고, 감옥에서 총리요셉이 만들어지며, 불같은 시험 속에서 욥의 믿음이 증명되었으며,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살인자에서 지도자로 성숙하였듯이 우리도 그러하다. 거친 파도는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비 온 후에 울창한 숲이 만들어진다. 배는 선착장에 묶어 두기 위함이 아니라, 험한 파도를 뚫고 항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성도는 싸워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 풍랑은 뚫으면 뚫린다. 바라보면 못 뚫는다. 벽은 밀면 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밀자! 뚫자! 그리고 만나자! 우린 그분을 만나야 결판이 나고, 생명을 소유해야 역사가 나타난다. 상처, 실망, 거절은 주님의 본심이 아니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허상이다. 우리 이제 성전 뜰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희생과 거절의 풍랑을 뚫고 지성소로 들어가자. 허리케인 같은 풍랑도 잠잠하게 할 메가톤 급의 은혜와 만나자. 생명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 생명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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