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 중에 찾아오시는 위로의 주님을 만나보세요!
- 홈지기 2026.4.5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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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
절망 중에 찾아오시는 위로의 주님을 만나보세요!
가난하다고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들도 절망합니다. 불치병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자들도 절망합니다. 개척교회 목사라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 목사들도 절망합니다. 결혼을 못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도 절망합니다. 신용불량자라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용우량자들도 절망합니다. 가을이라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봄에도 절망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잘될 때도 절망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이래도 절망하고 저래도 절망합니다. 풍요지수나 지식지수가 높아질수록 절망지수 또한 높아지게 되지요. 누구를 막론하고 절망에서 예외 될 사람은 없으며 절망의 영향 권 안에서 벗어나 절망의 사각지대에 숨을 자가 없습니다. 절망 앞에서는 영웅도, 큰 위인도, 하나님의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보다 더 힘들고, 가난하고, 실패하고, 더 아픈 사람을 보면서 용기를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야곱을 생각하며 성화됨의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모세를 보면서 살인자를 쓰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를 보며 엉터리 같은 내 자신의 영성과 인격에 안도의 숨을 쉽니다. 엘리야를 보며 우리와 같은 연약한 질그릇이었음에 한숨을 돌립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람가운데 본래부터 훌륭하고 완전한 사람뿐이었다면 아마 성경은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엘리야가 경험한 절망을 만나게 됩니다. 엘리야가 아마 성경에 나타난 인물 중 최초로 자살시도자(?) 내지는 스스로 죽는 것을 생각한자였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너무 힘들고 막다른 길을 만나면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 보다 났겠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큰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유야 어떻든 엘리야의 생각 속에서 죽음을 생각했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고, 또 그만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비를 내리게도 했던 갈멜산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로뎀나무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슬럼프에 빠져 있는 엘리야를 보면 과연 갈멜산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가 맞는가? 할 정도로 상반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절망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하나님은 그 절망의 현장으로 천사들을 급파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절망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갈멜산 정상에만 계신분이 아니라, 로뎀나무 그늘 아래에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갈멜산의 거성(巨星)이었던 엘리야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로뎀나무 아래서 초라하게 죽음을 생각하는 엘리야를 바라보시며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갈멜산 정상에 있는 엘리야에게만 박수와 갈채를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아무 힘도 없이 나무에 기대고 있는 엘리야에게도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절망 중에 있는 교회, 가정, 성도들을 신속히 희망으로 회복시키시기를 소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망에서 건져 올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절망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엘리야를 찾아온 천사는 엘리야를 어루만집니다. 다그치시지 않고 어루만지셨습니다. 그 다음에 마실 물과 떡을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떡과 물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사랑을 먹고 마셨던 것입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절망하던 엘리야가 다시 힘을 얻어서 하나님께 쓰임 받다가 결국 죽지 않고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생각하고 이젠 당신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편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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